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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옛날 생각

 얼마 전 회의 시간에 선형이라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대장께서 물으셨다.

 

"그런데 선형이라는 게 뭐죠?"

 

"..."

 

 일동 침묵했고 누군가가 이렇게 대답했다.

 

"직선이라는 거죠"

 

"..."

 

 또다시 일동 침묵했고 누군가가 이렇게 부연 설명을 했다.

 

"입력을 나눠서 넣어도 된다는 소리죠"

 

"..."

 

 대충은 다 맞는 말이었지만 더 이상 논의는 없었고 그렇구나 하면서 다음 이야기가 바쁘게 진행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답답한 회의실에서 나는 혼자 추억에 잠겼다.

 

'선형이란..'

 

 담장에 개나리 꽃이 피어오르던 어느 날, 스쿠터가 가득한 골목길을 지나고 자욱한 담배연기를 헤치며 구름다리를 지나 강의실에 들어섰다. 젊은 교수님은 전기공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막 군대에서 출소해 강제 노역에서 해방된 2학년 학생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색했고 새로웠던 것 같다. 젊은 교수님은 수업 중에 몇 번이나 속이 터지는지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도 지르고 칠판도 두드리며 이런 숙제를 내주곤 하셨다.

 

"야 니들 뉴턴의 법칙 정리해와"

 

 나는 그날 밤 뉴턴의 법칙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뉴턴의 제2법칙은 흔히 말하는 F=ma가 아니라 a=F/m로 설명하는 가속도의 법칙이었다는 것을.. 그 정도로 공부를 개차반으로 했던 것이다.

 

한 번은 키르히호프의 전류 법칙을 설명하면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정리하면 상미방이니까 선형이잖아 그렇지?!"

 

"선형이 뭐에요?"

 

 교수님은 자주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셨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러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잠깐 쉬자며 학생들과 구름다리에서 담배 타임을 가지셨다. 공부하기 힘드냐는 이야기를 하시던 그분은 이내 강의실에 돌아와 숙제를 내주셨다.

 

"선형성에 대해 정리해 와"

 

2. 선형성(Linearity)

선형성이란 다음 두 성질을 동시에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1) 가산성 (Additivity)

f(x1+x2)=f(x1)+f(x2)

 

 각각의 입력에 대한 결과를 합한 것과 입력을 합쳐서 넣은 결과가 동일하다. 이것이 가산성이고 superposition(중첩)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복잡한 입력 x1+x2에 대한 결과를 알기 어려울 때 이미 잘 알고 있거나 계산하기 쉬운 단순한 입력 x1x2를 이용해 각각의 결과를 얻고 단순히 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 동차성 (Homogeneity)

f(kx)=kf(x)

 

입력을 몇 배 늘리거나 줄였을 때 그 결과도 입력이 조정된 비율만큼 조정되는 성질을 말한다.

 

3. 선형성이 중요한 이유

 예를 들어 어떤 선형적으로 거동하는 물체를 1 N의 힘으로 눌렀을 때 1 mm만큼 변형하고 2 N의 힘으로 눌렀을 때 2 mm만큼 변형한다고 하자.이 물체에 먼저 2 N의 힘을 주고 다시 그대로 1 N의 힘을 추가한다면? 이 물체는 선형적으로 거동하기 때문에 먼저 2 mm만큼 변형하고 추가로 1 mm만큼 더 변형해 총 3 mm만큼 변형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고 이것이 가산성이다. 이것은 물체에 3 N의 힘이 가해졌을 때 3 mm만큼 변형하는 것과 같다.

 

x1=1N,y1=1mmx2=2N,y2=2mmx3=x1+x2,y3=y1+y2

 

 다시 위의 어떤 선형적으로 거동하는 물체를 1 N의 힘으로 눌렀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물체가 1 mm만큼 변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물체가 선형적으로 거동한다면 3 N의 힘으로 눌렀을 때 1 N일 때의 변형의 세 배만큼 변형할 것이고 이것이 동차성이다.

 

x1=1N,y1=1mmx3=3x1,y3=3y1

 

 이 물체는 가산성과 동차성을 모두 만족하므로 선형성을 만족하는 물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만든 어떤 수학 모델이 선형이라면 계산도 쉬워지고 결과의 예측이 쉬워진다. 만약 모델이 비선형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단순하게 선형대수학을 이용해 계산을 할 수 없게 되고 Newton-Rhapson method와 같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점진적으로 해를 찾아나가야 한다. 물론 오차 범위 안에서 그 해가 맞을 거라고 수용할 뿐이다.

 

 선형 상미분방정식으로 어떤 물리 현상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선형성을 이용하여 쉽게 정확한 해를 구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만약 유체역학과 같이 비선형 방정식의 대표주자인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컴퓨터에 의존하여 예측할 수밖에 없다.

 

4. 선형이 아닌 경우

 아래 방정식은 선형일까?

y=ax+b

그림 1. 선형일까요? 맞춰 보세요.

 

 성급하게 답하기 전에 선형성의 두 가지 조건인 가산성과 동차성을 만족하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입력 x1,x2에 대해 출력 y1,y2를 갖는다고 하자.

 

y1=ax1+by2=ax2+b

 

가산성은 아래와 같다.

f(x1+x2)=f(x1)+f(x2)

 

먼저 좌변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f(x1+x2)=a(x1+x2)+b

 

다음 우변을 생각해 보면 아래와 같다.

f(x1)=ax1+bf(x2)=ax2+bf(x1)+f(x2)=a(x1+x2)+2b

 

좌변과 우변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가산성에 위배된다.

f(x1+x2)f(x1)+f(x2)a(x1+x2)+ba(x1+x2)+2b

 

동차성은 아래와 같다.

f(kx)=kf(x)

 

위 방정식에 적용해 보면 좌변은 아래와 같다.

a(kx)+b=akx+b

 

이것은 동차성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kx+bk(ax+b)

 

 따라서 이 방정식은 선형이 아니다. 선형이려면 상수 b가 없어야 한다. 선형인 것 같지만 선형이 아닌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지난번 회의에서 "직선이죠.."라고 말한 사람은 상수가 b가 없을 때만 맞고 틀린 것이다. 그리고 "입력을 나누어서 넣어도 된다는 것이죠.."라고 한 사람은 가산성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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